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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영화 <마리아> 후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제 글은 항상 오랜만이라는 얘기로 시작하는 것 같네요.

간만에 영화 후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긴 말 않고 바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출처 - CGV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마리아>를 바로 어제 보고 왔습니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영화구요,

사실 이 영화와 실제 마리아 칼라스의 삶이 얼마나 싱크로율이 높은지는 조사를 제대로 안해서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냥 영화 얘기만 집중적으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줄거리는 대충

돈을 벌기 위해, 더 정확히는 돈을 벌고자 했던 어머니에 의해 노래를 시작하게 된 마리아 칼라스가

성악가로서, 또 인간으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어땠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의 이미지 - 술, 담배, 약, 사랑, 공허함 등등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라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뻔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압도하는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가 정말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게 2017년에 개봉했던 <아이 캔 스피크>를 보면서였던 것 같은데,

마리아가 의사에게 가수로서의 삶이 끝났음을 선고받는 장면, 그리고 죽기 직전 집에 홀로 남아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가녀린 팔목으로 두 손을 마주잡고 고개를 떨구며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잊히지가 않네요.

 

그리고 작품 전반에 그리스가 상당히 많이 언급되는데,

마리아 칼라스가 그리스계인 것도 물론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고대 그리스적 세계관이 작품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마리아의 집 안에는 그리스 석고 조각상들이 잔뜩 쌓여 있기도 하고,

그의 연인이었던 오나시스는 마지막 순간에 그리스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그리스가 자주 등장하는데,

마리아 칼라스의 인생이 하나의 그리스 비극처럼 보일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리고 여담이지만 중간에 손에 피칠갑을 한 채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배경도 그렇고 옷차림도 그렇고 어쩐지 그리스풍 느낌이 들어서

'아가멤논인가?(손에 피를 묻힌 여자 하니까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생각이 나더군요)' 했더니

메데이아더라구요.

작년에 들었던 그리스 비극 교양이 허사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하하

 

그리고 오나시스 풀네임이 아리스토틀(aristotles) 오나시스인게 설정이 아닌 걸 알거든요?

그니까 실존 인물의 실제 이름이라는 건 아는데

저는 이게 정말 묘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를 소유하고 싶었고, 가두고 싶었고, 그래서 그녀에게서 노래를 빼앗았던 인물의 이름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것이....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마리아 본인이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대사가 여러 인물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동시에

왜 자신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지 않냐는 카페 사장의 질문에 노래는 완벽해서는 안된다, 그 순간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며

분노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것도 뭔가 정적인 그리스 세계관과 본질을 공유하면서도 매 순간을 향유하려는 예술가로서의 기질을 숨기지 못하는

마리아의 모순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리고 노래!

영화는 안젤리나 졸리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클로즈업한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때 마리아가 부르는 노래가 베르디의 '아베 마리아'입니다.

흑백의 화면 너머로 노래를 부르는 안젤리나 졸리를 보다 보면 약간의 이질감도 잠시

지금 내가 보는 사람이 마리아 칼라스고 주인공이구나, 하는 설득력이 생깁니다.

 

또 주제가 주제인 만큼 다양한 오페라 아리아가 나오는데,

오페라 알못인지라 그냥 음 노래 좋군 정도의 자세를 유지하며 감상했음에도

별 문제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바네라같은 친숙한 노래가 나오면 반갑긴 했습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 내외를 만나는 파티장에서는 하바네라가 재즈풍으로 편곡된 버전으로 흘러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게 귀에 딱 꽂히더라구요.

 

근데 뭔가 케네디 내외 - 마릴린 먼로가 등장하고

대통령이랑 마리아가 대면하는 장면은 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텐션이 쳐지는 느낌을 좀 받았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는 무책임한 발언은 좀 그런가요?

그냥 안젤리나 졸리를 계속 보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니 그리고 happy birthday mr. president가 영화에서는 왠지 모르게 더 끈적하게 느껴진 게.... 저만의 착각일까요?

집에 와서 원본 영상을 다시 봤는데

영화보다는 좀 더 담백한 느낌이 드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느낌

 

뭐 여튼 재클린 케네디가 마리아 칼라스 이거(whatever)이신 분이랑 재혼한 사이인 줄은 전혀 몰랐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전개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오나시스란 캐릭터도 첫 등장부터 강렬했는데(개인적으로는 비호감이라는 의미에서)

마지막 병실 장면은 좀 미간 주름을 펴고 볼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각설하고,

<마리아>가 희대의 명작이냐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좋은 영화였나?

인상적인 영화였나?

살면서 본 영화 중(몇 안되지만) 손에 꼽을 만큼의 감정적 동요를 불러 왔나?

하면 맞다고 하겠습니다.

후기는 좀 드라이하게 쓴 감이 없잖아 있는데 막판에 가서는 눈물이 또르륵 흐를 뻔 했거든요.

저처럼 예술과 인간을 다루는 작품에 관심과 애정이 많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젤리나 졸리의 진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차력쇼라기보다는(워낙 다른 배역의 배우들도 훌륭해서) 

그냥 이 영화를 다른 배우가 하는 건 상상이 안 되는 느낌의 강렬함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가 영국인 프로듀서(맞나?)의 요청으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

'푸치니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소리질러라'는 말을 듣는데

저는 이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올 초에 푸치니의 <라보엠> 총서를 도서관에서 빌렸었는데,

작품 본문도 물론 재밌었지만 푸치니의 생애와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굉장히 인간적인 예술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푸치니와 마리아 칼라스가 공유하는, 예술하는 인간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마리아>는 여러모로 정말 재밌게 본 작품입니다.

템포가 빠르지도 않고 극적인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저는 예술 앞의 인간을 다루는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제 취향에 부합하는 영화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그리고 딱히 흥미가 없으시더라도 안젤리나 졸리의 그 연기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상영관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내려가기 전에 한 번은 영화관에서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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