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기/영화

영화 [괴물] 후기

어제는 오랜만에 코엑스에 가서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는 [괴물]을 관람했습니다.

혹시 궁금해하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저는 결국 복학을 하게 됐구요...

솔직히 좀 충격적인 결과라 어제 하루는 저 나름대로 마음 정리를 좀 하러 영화도 보고, 외박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수용한 상태이구요, 한 3일만 더 지나면 완전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좀 아프긴 하네요..

 

각설하고, 이제 진짜 리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출처 - 나무위키(인데 아마 나무위키는 영화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을 듯 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좀 충격적인 사실일 수도 있지만,

이번 영화가 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입문작입니다.

제가 영화를 많이 본 편도 아니거니와, 일본 영화와는 더더욱 연이 없었던 터라

언젠가는 봐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미루다가 지금까지 왔네요.

한국 배우들과 합작한 브로커는 제 예상보다 주변 반응이 별로라 넘겼고, 다른 작품들은 위시리스트에 넣어놓기만 하고

보지는 못한 상태...

그리고 사실 이 영화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봤습니다.

아시겠지만 어제 제가 엄청난 심신미약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볼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듯 하네요.

 

*당연하겠지만 지금부터 마구 스포할 예정입니다

 

처음에 시놉시스와 장르만 봤을 때는 뭔가 조금 더 추리/수사 스릴러를 기대했는데

막상 까보니 그런 영화는 전혀 아닙니다.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인간 뇌와 돼지 뇌를 바꾸면'을 다룬 대사가 매우 자주 등장하는데,

처음 무기노(주인공)가 엄마한테 그 얘기를 꺼냈을 때, 그리고 얼마 후 귀에 상처를 달고 돌아왔을 때

저는 진지하게 주인공이 학교에서 어떤 이상한 생체 실험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메타포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후문...

 

그래서 이 영화의 정체는 무엇이냐!

(제 사견이지만 여기부터는 진짜 초강력 스포라서 볼 예정이신 분들은 가급적 스킵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놀랍게도 메인 정체성이 퀴어인 작품입니다.

 

영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자면 -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무기노 미나토라는 소년이 어느날부터

조금씩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그걸 수상하게 여긴 어머니의 추궁에 못 이겨 담임인 호리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어머니인 사오리는 당장 학교로 달려가지만 시종일관 무신경한 태도를 보이는 학교 관계자들의 태도에 분노하고,

종국에는 교장 선생님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호리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도록 만들지만

미나토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태풍이 치는 어느 날, 자고 있어야 할 미나토가 사라지는데...

 

이게 사오리의 시선을 다룬 이 영화의 1부이구요, 2부에는 호리 선생이, 3부에는 미나토와 동급생 호시카와 요리가

중심적으로 다뤄집니다. 

분명 1부에서는 상종도 못할 빌런이라고 느껴졌던 호리 선생이 알고 보니 그냥 억울하게 오해를 샀을 뿐인 멀쩡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그렇다면 최종 빌런은 미나토인가라는 불안감이 엄습할 즈음,

3부가 시작되고 이 모든 균열들에는 다 이유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의 진행 방식이 굉장히 섬세하다고 느낀 부분들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인물의 시선을 바꿔가며 조금씩 진실을 보여주는 방법이

얇은 껍질을 벗겨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연출을 어떻게 비유해야 와닿을까 고민을 꽤 오래 했는데요.

처음에는 글자로 가득한 종이 위에 구멍이 송송 뚫린 색종이를 여러 장 겹쳐놓고 한 장씩 벗겨내는

장면을 상상했다가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지금까지 떠올린 것들 중에는 블럭에 비유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때 사고력 수학 해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

굉장히 복잡한 블럭 구조를 위에서 바라볼 때, 옆에서 바라볼 때, 대각선에서 바라볼 때로 나눠서

평면도를 보여주고 원래 진짜 모양을 추측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출처 - 학습지 제작소

 

이런 느낌입니다.

같은 모양이라도 어떤 각도와 위치에서 바라봤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 마련인데요,

총 3부로 나눠서 같은 이야기에 숨겨진 각자의 입장을 하나씩 조합하다 보면

원래의 모양이 드러난다는 점이 비슷하지 않나요?

아니면 ㅈㅅ

 

근데 속으로 여러 생각들을 곱씹다 보니 이 영화는 왜 이런 방법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왜 이 작품을 보는 대중에게까지 이토록 철저하게 진짜 이야기를 숨긴 걸까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뭐 진짜 이유는 제작진만 알겠으나....

 

소재 자체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의 것이 아니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오직 미나토와 유리, 둘만이 알고 있던 이야기를 제 3자인 호리가 깨닫는 순간부터 관객에게 진실을

전달하기 시작함으로써 따라오는 그 충격을 의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다 그 두 소년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눈치챈 순간 쓰던 안경을 벗고 잠시 충격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져야 했는데요....

사실 미나토와 요리의 성별이 달랐다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기에 영화 속의 사람들도, 영화 밖의 저도 아예 눈치조차 재지 못했던 거겠죠,

감독은 그런 리액션을 원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괜히 거장이 아니듯...

 

그리고 또 하나 덧붙이자면, 호리와 사오리의 이야기를 다룬 게 오직 3부를 위한 장치 정도의 이유는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목적이 다분하긴 하지만요.

 

홀어머니 사오리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라든가(이외에도 영화에서도 싱글맘이라는 설정이 굉장히 강조됩니다),

호리 선생이 습관적으로 '남자답게'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등의 연출은

두 소년이 왜 그렇게 스스로를 억압해야만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실제로 3부를 보고 1,2부를 다시 돌아보면 퍼즐이 딱딱 들어맞는 기분이 들기도 하구요.

근데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사오리와 호리, 그리고 2부와 3부 사이에(맞나?) 짧게 등장하는

교장 선생님에게도 상당한 양의 서사가 주어집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단지 주인공의 주변인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인물로서 어떤 모습인가를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모습이 느껴질 정도로요.

 

이건 갑자기 생각나서 하는 얘긴데,

맨 위에서 언급했던 오해 아닌 오해(생체 실험 뭐시기)를 아직 하고 있던 때에

저는 정말 엄청난 위화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2부가 끝날 때까지 이 영화가 조성하는 위화감이 정말 엄청나서 속으로

리뷰를 쓰게 된다면 메인 키워드는 '위화감'이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1부에서는 교장 선생님을 포함한 선생님들의 태도가 무서울 정도로 이상했습니다.

사오리 대사 중에 '지금 눈이 다 죽어 있잖아요!'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걸 딱 듣는 순간 머리를 끄덕이게 될 정도로 그 교장실의 분위기는 정말 기괴했다고나 할까요,,

그때까지도 저는 그 교사들이 단체로 미나토의 생체 실험에 가담한 게 아닐까라는 음모론을 혼자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미나토가 주된 이유였는데요,

호리가 멀쩡한 사람이라고 깨닫는 순간 1부에서의 위화감은 해결이 되었으나

그걸 이해하게 되면서 호리를 피하거나 모함하는 미나토의 모습이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2부가 끝날 때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 붕 뜬 기분이 들었는데, 대체 이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서 무서워지기까지 했습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의도된 바가 아닐까 싶네요.

호리 선생이 폭풍이 몰아치는 날 미나토를 찾아가서(요리였나..?) '너희는 잘못이 없어!'라 소리치는 장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순간까지도 이해를 못하고 있었지만요)

이 영화가 지금까지 꾸며왔던 거짓(은 아니지만 어쨌든 진실을 숨겨왔다는 점에서)된 허상,

그곳에서 비롯되는 알 수 없는 위화감과 긴장감은 그 대사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제 3자가 가려졌던 진실을 꿰뚫어 본 순간 그 누구도 가해자가 아니게 된 것이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이 모든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일품입니다.

저는 일본어를 전혀 못해서 배우들의 대사 톤이나 발음이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외국인이라서 파악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요소들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다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아이들이 참...

반짝이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타카하타 미츠키 님이 특별 출연을 하셔서 호감도 +10

 

 

제가 리뷰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손꼽힐 정도로 줏대 없는 취향을 갖고 있지만

좋아하는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모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물론 뭐 작품을 보고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어쨌든 저는 사람이 주가 되는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괴물]도 이미 제 마음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한 모양입니다.

제가 사회인이 되고 부모가 되어서 이 영화를 다시 보면 또 다른 기분이 들까요?

아직은 모르겠지만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이 깊었음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교장 선생님이 미나토에게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몇 사람만 누리는 걸 행복이라 부르지 않는다. 행복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속 두 아이도 마지막에 눈부신 들판을 끝없이 달리던 그 순간

행복을 마음껏 누렸을까요?

 

하고싶은 이야기가 아직도 너무 많지만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영화관에서 내려가기 전에 한 번은 보시길 강력 추천드립니다.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을만큼 좋은 작품입니다.

 

언젠가 퀴어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리즈를 해보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었는데, (비밀이지만 전에 한 번 시도했다가 급히 후진했습니다.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한 관계로..)

기회가 생긴다면 이 작품도 다시 한 번 다뤄보고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마리아> 후기  (1) 2025.04.29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후기  (0) 2023.05.09
영화 [디어 에반 핸슨] 후기  (0) 202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