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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후기

정말 오랜만에 영화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MCU를 몹시 좋아하는데요,

다만 기억력과 체력 등의 문제로 모든 캐릭터와 서사를 알고 있을만큼의 덕후는 아닙니다.

그냥 캡틴 아메리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정도의 팬?

 

하지만 많은 마블 팬들이 그랬다시피,

페이즈가 바뀌고 원년 멤버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저 역시 마블 영화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였는데,

(이마저도 멀티버스라는 덫에 걸린 물리덕후의 일탈이었을 뿐.. 그전에 개봉한

블랙 위도우나 앤트맨도 안봤습니다)

흡사 팀 버튼을 연상시키는 샘 레이미 감독의 호러 연출과 멀티버스라는 매력적인 요소 덕에

실망스럽다는 느낌까지는 받지 못했으나,

완다 비전 시리즈를 챙겨보지 못한 입장에서 모든 스토리라인과 급변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잡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극찬을 받았던 스칼렛 위치 역의 엘리자베스 올슨 배우가 엄청난 열연을 통해

관객에게 최선의 설득력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서사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을 연기와 연출로만 커버하기에는

장대한 역사와 다량의 떡밥을 가지고 있는 마블 영화 특성상 무리가 있기에...

그 이후로 개봉한 토르와 블랙 펜서는 아예 볼 생각조차 안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이하 가오갤)도 볼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여기저기서 영화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후기가 들려오기에 큰 맘 먹고 이틀 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보고 왔습니다.

무려 16000원!!!이라는 거금을 쏟아부었지만,

한 번 하는 일 제대로 하자라는 제 신조에서 비롯된 블록버스터 영화는 무조건 큰 상영관에서 봐야 한다는

개똥철학을 어길 수는 없었기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가오갤3가 어땠냐?

개인적으로는....생각보다 괜찮았고, 생각보다 아쉬웠다 정도였습니다.

 

우선 가오갤 본연의 색채를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핀도르에 10점.

무리하게 캐릭터들을 바꾸거나 억지 사연을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10점.

 

특히 초반 오프닝 시퀀스에서 라디오헤드의 CREEP이 흐르며 나오는 롱테이크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에 가오갤의 척수라고 부를 수 있는 테마곡 COME AND GET YOUR LOVE이 등장할 때의 그 느낌...

그간 가오갤 시리즈를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가움에 미소짓고 아쉬움에 고개를 떨구게 할 요소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만큼 가슴이 많이 아프기도 했구요....

 

피터 퀼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자타공인 금쪽이죠.

특히 인피니티 워 - 엔드 게임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걔가 눈만 안 돌아갔어도 문제 없었다...

아이언맨 살려내라....

 

하지만 그럼에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

특히 기존의 마블과 친숙하지 않은 관객들까지 끌어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가 가진 특유의 매력,

끊임없는 위트와 인간미 때문입니다.

히어로의 필수 조건인 아픈 과거와 쉴 새 없이 명언을 쏟아내는 능력을 제외하고도

추억의 명곡들을 소환해 동시대의 사람들을 건드리는 감성과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는 빠른 템포의 재치있는 대사들은

누구나 피터 퀼과 그의 동료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저는 앤디 위어 작가를 참 좋아하는데요,

여러분도 [마션]이라는 영화를 한번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약하면 '천재 식물학자가 화성에 버려져서 감자 농사로 먹고살다 구출되는 영화'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확합니다.

물론 영화 완성도는 훌륭했고 주연을 맡은 맷 데이먼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배역을 소화했지만,

원작만의 감성은 역시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부작이

마션 - 아르테미스 - 프로젝트 헤일메리로 이어지는 앤디 위어 3부작과 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작품은 확고하게 시리즈의 정체성과 캐릭터(물론 앤디 위어의 작품들에서는 주인공이 계속 바뀌지만, 각 작품의 중심 인물들이 꽤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를 세우고,

그 다음엔 세계관 확장과 더불어 여러 요소들을 첨가한 뒤

마지막에는 기존의 이야기들보다 조금은 감성적인?

조금은 뻔하지만 함축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들을 다루는 구조...랄까요.

(근데 써놓고 보니까 그냥 모든 시리즈물의 특징인 것 같기도?)

 

물론 앞으로의 추세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앤디 위어가 계속 우주 시리즈를 이어갈 수도 있고,

이번 가오갤3 쿠키 영상에서 스타로드는 돌아온다고 했으니 가오갤 시리즈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까지만 본다면 앤디 위어와 가오갤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합니다.

보는 내내 실소를 유발하는 개그가 나오는 것도 그렇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중간중간 노래나 미디어 등을

알맞게 활용하는 것도 그렇고 (마션에서는 7-80년대 디스코 음악과 TV 프로그램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유사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가오갤3를 볼 때의 제 기분은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 난 후의 그 감정과 똑같았습니다.

아쉽고 슬프지만 좋았다.

 

이동진 평론가께서 이번 영화에 대해

'픽사의 뛰어난 작품들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애절한 순정을 마블에서 만나게 되다니'

라는 한줄평을 남기셨더라구요.

 

십분 공감되는 평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더 아쉽기도 했구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앤디 위어의 우주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데 마션이나 아르테미스에 비해 훨씬 대중적인 방향으로 감성적인 작품이 되었다는 건 읽는 내내 느껴졌습니다.

뭔가 내가 알던 앤디 위어가 맞긴 맞는데, 중간에 무슨 시련을 겪은 건지 한층 애절해졌다?

그 느낌이 조금은 이질적이기도 했습니다.

 

가오갤도 감성 가득한 영화지만,

이번에 개봉한 3편은 정말 감성으로 충만합니다.

로켓의 과거 아픔, 이를 통해 알게 되는 '가족'과 소속감의 중요성, 그리고 원년 팀의 애절한 작별까지.

보는 내내 아 슬프다, 근데 내가 알던 가오갤이 맞나?

앞서 봤던 한줄평처럼 마블의 탈을 쓴 인사이드 아웃을 보는 느낌?

서양 애니메이션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직관적이면서 묵직한 감성들에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조금은 톤이 더 가벼웠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맨티스나 로켓, 네뷸라의 대사들이 굉장히 '옛다 감동이다'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특히 로켓의 옛 친구 라일라가 '아직은 안돼'라며 로켓을 깨우는 장면은

토씨 하나 안틀리고 미리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뻔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었습니다.

 

다만 영화를 다 보고 느낀 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어쩌면 이 모든 장치들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프랜차이즈에게

가장 확실하고 예의 있는 작별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은 상투적이고 뻔한 주제들을 던져주더라도,

지금까지 알던 마냥 위트 있고 가벼운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모든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감독과 마블이 보인 최대한의 배려가 아닐까요.

 

그리고 기존 캐릭터들 성격은 그대로 가져가서 막 엄청 어색하다던가 그렇진 않습니다.

(기억을 잃은 가모라는 제외하고) 여전히 드랙스는 멍청하고, 맨티스는 약하고, 네뷸라는 급진적이며 로켓과 피터는

장난꾸러기들이지만,

그들도 성장이란 걸 했으니까요.

그냥 하나의 성장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납득이 되는 아쉬움들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횡설수설했지만,

여튼 제 감상평은 이정도입니다.

스타로드는 돌아오겠지만, 우리가 알던 느낌의 우주 수호자들은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마블의 또다른 해가 졌네요.

이제 우주는 누가 지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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