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최근에 읽은 책 두 권에 대해 잡담을 좀 나눠보려 합니다.
포스팅 자체도 오랜만이지만, 마지막으로 책 리뷰를 쓴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상당히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될 것 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듭니다.
무엇보다 두 권 다 줄거리를 요약하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하고 심오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심지어 한 권은 단편집)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 짓게 될 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간만에 읽은 책들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던지라 읽으면서 마음 속에 쌓인 얘기들을
마냥 묵혀 두기에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어 오랜만에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습니다.
오늘 다룰 책은 제목에도 나와있듯이 [노인과 바다]를 비롯하여 걸출한 명작들을 배출해 낸
미국의 대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 (원제: A Farewell to Arms - 아마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은 '무기여 잘 있거라'로 알고 계시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제가 읽은 민음사 판의 제목과 번역에 대한 설명을 담은 역주를 따라 [무기여 잘 있어라]로 적겠습니다.)와,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SF 작가 필립 K. 딕의 단편집 [마이너리티 리포트]입니다.
오늘 제 목적은 두 책의 줄거리를 요약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읽으면서 떠오른 공상이나 의문같은 것들을 늘어놓고 저 혼자 곱씹기 위해 쓰는 글이지만,
그래도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그 중 책을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의 사전 정보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무기여 잘 있어라]는 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소설입니다. 건축을 공부하던 미국인 프레데릭 헨리는
전쟁 발발 후 이탈리아군에 입대해 운전병으로 복무하게 됩니다. 최전선에서 앰뷸런스로 환자를 수송하던 그는 작전 도중 폭발에 휘말려 같이 식사를 하던 동료들을 잃음과 동시에 다리 부상을 입어 후방의 병원으로 입원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전에 몇 번 데이트를 즐겼던 영국인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와 재회합니다.
치료를 마친 후 전선으로 복귀한 헨리는 같이 복무하던 전우들과 재회하며 일상으로 돌아오는 듯 했으나,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부하들을 데리고 퇴각하다 첩자로 몰려 아군에게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눈 앞에서 같은 이탈리아 군복을 입은 장교들이 하나 둘 처형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그는 강물에 뛰어드는 기지를 발휘해
여차저차 캐서린과 함께 그를 쫓는 헌병들을 피해서 스위스로 망명을 시도합니다.
그렇게 스위스에서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도중 캐서린이 제왕절개 수술로 목숨을 잃고,
헨리는 또다시 홀로 남겨진 채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사실 저는 헤밍웨이의 감성을 좋아하는 독자는 아닙니다.
헤밍웨이 작품이라고는 [노인과 바다]나 [킬리만자로의 눈]밖에 읽어본 적 없는 주제에 참 웃기죠?
뭐 물론 아직 제가 너무 어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작품을 몇 개 읽어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읽자마자 내 취향이다! 느꼈던 작가는 아님이 확실합니다.
[무기여 잘 있어라]는 [노인과 바다]보다는 훨씬 재밌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헤밍웨이의 소설은 마냥 화려하진 않으면서도 눈 앞에 장면이 그려지는 듯한 묘사가
특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과 바다]에서는 노인이 바다에서 벌이는 사투가,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는 주인공이 폭발을 겪는 장면과 마지막에
아내 캐서린을 잃는 장면에서 그런 점이 특히 잘 드러납니다.
솔직히 [무기여 잘 있어라]도 상당히 허무하게 끝났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지만요...
그래도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헤밍웨이라는 작가에 대한 막연한 편견은 많이 옅어졌습니다.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그냥 한 번 쯤은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책에 수록된 단편만 20편인 데다(참고로 수록된 작품들은 출판사인 '폴라북스'에서 선정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하나하나 분량이 짧지 않거나 짧아도 굉장히 임팩트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어
제가 요약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밑에서 책에 대한 얘기를 하며 조금씩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필립 K. 딕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비롯해서 벤 에플렉 등이 출연한 [페이첵],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등
영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작품들의 기초가 된 소설들의 작가인 것이죠.
저는 우연한 기회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읽었다 좋은 인상을 받고
최근까지 필립 K. 딕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도장 깨기 하듯 찾아 읽고 있습니다.
필립 K. 딕은 말 그대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가입니다.
공상을 좋아하는 저로서도 단 한번도 생각해 봤거나 들어본 적 없는 주제들로 소설을 쓰고,
이를 도구로 철학적 통찰에까지 도달하는, 개인적으로 SF 장르의 궁극적인 목적을 꿰뚫고 있는 작가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혹자는 문체가 유려하지 못하고 투박하다며 지적하기도 하지만,
제가 워낙 식견이 좁아 그런 부분은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명 센스는 좀 구립니다...단편집을 읽다 보면 같은 이름이 몇 번이고 다시 등장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 두 권을 하나의 글로 엮기로 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두 책이 몇 가지의 큰 주제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는 '전쟁의 허무함'입니다.
글을 쓰기 전에 기억도 되살릴 겸 헤밍웨이에 대해 짧은 글(=나무위키) 하나를 읽게 되었는데,
헤밍웨이가 허무주의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가임을 설명하는 글이었습니다.
제 부족한 학문적/문학적 소양으로 인해 저는 허무주의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문학 사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무기여 잘 있어라]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만을 그대로 얘기해 보자면,
헤밍웨이는 작중에서 전쟁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사랑이나 믿음 등의 허무함에 대해 논하기도 하지만,
전쟁 그 자체의 허무함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위 요약에서도 등장했던 총살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세 명의 부하 병사와 탈출을 시도한 헨리는
민가에 식량과 쉼터를 구하러 갔다 부하 두 명을 잃습니다.
한 명은 아군(이탈리아군)의 총알에 목숨을 잃고,
또 한 명은 전우를 잃은 상실감과 두려움에 스스로 살길을 찾아 밤에 몰래 도망칩니다.
(읽으면서 황순원의 [너와 나만의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던 장면입니다.)
병사 한 명과 다시 길을 떠난 헨리는 걸음을 옮기다 입고 있던 장교 군복 때문에
이탈리아 군복을 훔쳐 입은 독일군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당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강물에 몸을 던져 도망칩니다.
헨리는 도망쳤지만, 헨리 앞에 있던, 그리고 뒤에서 신문을 기다리던 군인들 모두
높은 확률로 누명을 쓰고 아군에게 사살당할 위기에 놓인 셈입니다.
같은 군복, 같은 편에 섰음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모습은
전쟁에서의 승리, 그리고 전쟁 그 자체의 의미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역설하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길어지는 전쟁은 목적도 방향성도 잃은채 죽음만을 불러오고,
존귀한 생명은 애국심이라는 미명 하에 스러집니다.
헨리가 기차에 타는 또다른 장면에서는
'나 정도 나이의 남자가 군대에 있지 않은 것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묘사됩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사람들의 희생은 당연해집니다.
이러한 시각은 앞서 산산조각으로 분해된 동료의 시체를 목격한 헨리의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로 하여금
더 큰 거부감과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라는 의문을 헨리의 시선을 통해 던지는 셈입니다.
이런 내용은 필립 K. 딕의 단편 중 '수호자'와 '두 번째 변종'과 대조됩니다.
두 단편 모두 냉전 기간 소련과 미국의 대치 상황 속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수호자'는 조금은 희망찬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반면, '두 번째 변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과 비극으로 가득합니다.
'수호자'에서 방사능을 피해 지하로 숨은 인류는 그들 대신 전쟁을 지속할 '리디'들을 만들어냅니다.
지상에서의 전투는 모두 리디들에게 맡긴 채 모니터로 상황을 확인하고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이어가던
미군은 어느 날 리디들의 몸에서 방사능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지상으로 팀을 파견합니다.
그 결과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전투 방법을 모색하던 리디들은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최적의 결론에 도달해
지하의 인간들에게는 전쟁을 이어가는 척 조작된 사진과 영상을 전송하는 한편 망가진 지구를 복원하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결국 인류는 전쟁을 하고 있다는 환상에 갇혀
전쟁이 끝나기만을 땅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죠.
'두 번째 변종'은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봤던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상황과 유사하게 흘러갑니다.
미군은 '발톱'이라는 신무기를 개발해내는데, 이들은 인식표를 가지고 있지 않는 유기물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갈기갈기
조각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수리와 개발을 거듭하여 하루하루 진화해갑니다.
적군은 물론 인식표를 잃은 아군도 죽여버리는 발톱들은 작은 구체에서 어엿한 인간, 그것도
상대를 가장 무방비하게 만들 수 있는 어린 소년이나 부상병, 여성의 모습을 한 살상 무기로 업그레이드된 채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종국에는 우주선을 탈취해 인류의 새 터전이 될 달에까지 진출합니다.
[무기여 잘 있어라]와 이 두 단편은 전쟁에 방향성이 없어지는 상황들을 연출합니다.
'수호자'에서 리디들은 전쟁을 하나의 '변곡점'이라 설명합니다. 국가 내부에서의 충돌이 잦아져 생긴 에너지를 국가 외부로 확장시켜 전쟁의 형태로 해소하는 인류의 관습은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고,
당연한 수순이지만 무의미한 희생을 야기하는 전쟁은 인간에게 전쟁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들이 주창하는 '국가적인 이익'은 사실 무의미한 변명, 혹은 화려한 포장지일 뿐입니다.
극단적인 편 가르기로 시작한 전투는 싸워야 할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기준선을 잃은 채 배회하는 사람들과 부상만을
남긴 채 방향도 목적도 없이 이어지다 누군가의 항복으로 끝이 납니다.
전쟁은 폭력성의 무의미한 배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이 두 책을 읽으며 저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문이 너무 길어져 뒷심이 너무 딸리는 관계로,,,
나머지 내용은 다음 글에서 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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