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기/공연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후기

안녕하세요!

요즘 개강블루방지차원에서 문화생활에 굉장히 열중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레미제라블]과 [키다리 아저씨]를 3일 간격으로 보고 왔습니다.

2월에도 공연 관람 일정이 몇 개 잡혀 있는데...

어차피 개강하면 마음껏 보러 다니지도 못할 것 같아 지갑을 희생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순서 상 [레미제라블]을 먼저 봤으면서 왜 [키다리 아저씨] 글부터 먼저 쓰냐구요?

그건 말이죠...

이제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저는 1/30 7:30 공연을 봤는데요,

참으로 다사다난한 하루였습니다...

 

원래도 대학로를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코로나+주로 대극장에 올라오는 작품들을 많이 보는 탓에

과장이 아니라 거의 4년?만에 링크아트센터를 찾았습니다.

근데 지하로 연결되는 야외 계단부터 매표소 앞까지 줄이 끝없이 있는 걸 보고 오늘 무슨 굿즈라도 나눠주나..?

의아해하며 1층 매표소에 가서 표를 보여드렸죠.

근데 수령을 지하 1층에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알겠다고 말씀드린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순간...!

아까 봤던 그 줄이 매표소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저는 눈치채고 만 것입니다...

공연 시작이 5분도 남지 않았던 상황이기에 설마 아니겠지 하고 어셔 분께 '이거 혹시 티켓 수령 줄인가요?' 여쭤봤는데

제 황당한 심경에 공감해주시며 '네ㅠ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뭐... 계단으로 올라가서 줄에 합류했죠.

제 뒤로 도착하시는 분마다 '이거 무슨 줄이에요?' 물어보시길래

'티켓 수령 줄이라고 듣긴 했는데... 저도 모르겠어요....'를 세 번 반복한 뒤 무한 기다림을 시전했습니다.

결국 공연 시작이 10분 정도 지연됐는데 이때까진 별 생각 없었습니다.

(다만 티켓을 받고 무슨 사진같은 걸 주시면서 '이거 가져가세요!' 하시길래 30초 정도 그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다

내 거 아니겠지... 하면서 그냥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해당 회차 증정품이라는 것을 집에 와서야 확인했을 때...

좀 슬펐습니다...)

 

그리고 착석해서 공연을 잘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루비스(호칭 붙이기 귀찮으니 그냥 배역명으로 부르겠습니다)의

마이크가 됐다 안됐다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약 5초 간격으로 꺼지는 걸 반복하길래 연결이 불안정한가 했습니다.

마침 극 상황 상 제루비스가 잠깐 무대 뒤로 빠지는 장면이 있길래

뭐 고쳐지겠지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있었는데

다시 무대로 올라오고 얼마 되지 않아 마이크가 완전히 꺼져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루샤 마이크도 맛이 가서 졸지에 두 명창의 생라이브를 관람하던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도 괜찮은데..?'

 

사실 드아센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극장 규모가 그리 큰 편이 아닙니다.

물론 제가 블루스퀘어만 23401번 방문해 본 대학로 문외한이라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관객석 뒤까지 마이크 없이 진행해도 소리가 묻혀버릴 만큼 큰 공연장은 아니죠.

그럼에도 뮤지컬은 연극과 다르게 마이크를 연결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라지만

마이크 없이 듣는 뮤지컬도 꽤 괜찮아서 혼자 '이대로 그냥 가려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중간에 스텝 분이 '배우님들 내려오실게요' 하셔서 중단됐지만요...

(처음에는 마이크 고장에 분노한 관객이 육성 훈수를 하시는 줄 알고 식겁했습니다)

제루비스 배우님이 '최선을 다했습니다(노력했습니다였나?)'하고 내려가시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강제 휴식 시간 동안 속으로 계속 낄낄거렸습니다.

여튼 뜻밖의 기계 고장이었지만

덕분에 두 배우의 아름다운 생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

 

여러모로 매끄럽게 진행했다고 보기에는 무리인 공연이었지만

솔직히 저는 최근에 했던 문화 생활 중 제일 재밌었습니다.

아무래도 극 예술은 활자가 아닌 무대 위에서 관객과 감응할 때 비로소 완성되기에

이런 사건 사고 역시 공연 관람을 할 때만 경험해볼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물론 고도의 몰입을 요구하는 극이라면 흐름이 깨져서 좀 아쉬웠을 수는 있겠지만

[키다리 아저씨]의 경우 워낙 대중적이라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기도 하고,

끊긴 부분이 엄청난 감정을 요구하는 장면도 아니었어서

오히려 좀 즐거웠습니다.

물론 시간, 돈 들여서 공연 관람하러 오신 분들께서

해당 사고 때문에 기분이 상하신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냥 저는 이랬다,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공연 얘기를 안 한 것 같으니까 극 자체에 대한 코멘트도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제루샤 에벗과 제루비스 펜들턴(=키다리 아저씨) 두 명만 등장하는

2인극이구요, 오로지 제루샤의 시점(편지)으로 진행되는 원작과는 달리

뮤지컬에서는 제루비스도 자아가 생겼습니다. (뭐 원래도 자아는 있었겠지만서도..)

2단 케이크처럼 무대 중앙에 제루비스의 서재 세트가 겹쳐 올라가 있고

그 나머지 1단의 공간을 제루샤가 활용하는 연출입니다.

제루샤가 돌아다니는 곳곳에는 여닫을 수 있는 상자가 6-7개 정도 위치해 있는데

공연 전개에 따라 두 배우가 요리조리 상자를 움직여가며 배치를 바꾸며 연기합니다.

상자 하나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기도 하고, 위에 베개와 이불을 얹어 침대를 만들기도 하고,

몇 개를 쌓아올려 언덕을 만들기도 하는 식으로요.

동선 외우기 빡셌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좀 이질적이라고 느꼈던 부분은

분명 원작에서의 제루비스와 키다리 아저씨는 제루샤라는 필터를 하나 거친 상태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뭔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신비로운 느낌이 있었는데

뮤지컬에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줘서...

좀 적응이 안 됐달까요...

중간에 개그 요소도 있고 되게 찌질한 부분이 많아서 원작을 기억하고 계시다면

약간은 '이거 맞나?' 생각하게 되는 포인트들이 있었습니다.

 

제루샤의 이야기는 원작과 비슷하게 오로지 편지를 읽는 형식으로 진행돼서

좋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제루샤는 처음과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대사가

키다리 아저씨한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졌네요. 반대로 제루비스는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백이 꽤 비중이 컸습니다.

 

음악은 뭔가 딱 와닿는 넘버가 있었다기보다는

적당히 극 분위기를 잘 살리는 느낌으로 진행된 것 같습니다.

첼로 - 피아노 - 통기타 - 작은 타악기? 정도로만 구성된 것 같았는데 (저 막귀예요)

오케스트라 피트가 세트 뒤에 있는 게 좀 신기했습니다.

2층에서 관람했는데 소리가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져서 관람하는 내내

mr일 것이라 정말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인터미션 끝날 때 즈음 악기 조율하시는 것 듣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분명 무대 앞이 바로 관객석인데 어디 있나 찾아보니

세트 뒤에 있었다는...

 

개인적으로는 캐스팅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 분 (유주혜/김경수 배우님) 다 이름만 들어본 상태였는데

역시 네임드는 이유가 있다...

노래도 언급할 필요 없이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기가 더 좋았습니다.

저의 비천한 교정 시력 탓에 표정을 제대로 확인하기엔 문제가 있었지만

목소리로 와닿는 연기력은 굉장히 좋았다...

 

뭐 여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근데 분명히 1/30 관람객 대상으로 쿠폰 보내준다고 해놓고

안 주네요.

디엠도 보내봤는데 확인도 안하시고...

전화를 다시 해봐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따뜻하고 부담 없는 뮤지컬이 보고 싶으시다!

[키다리 아저씨] 추천드립니다.

할인도 하고 있다네요.

기억이 소실되기 전에 [레미제라블] 후기도 곧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후기 > 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근 본 공연들 후기 1편  (2) 2025.06.04
뮤지컬 [레드북] 후기  (2) 2023.05.21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관람 후기  (0) 202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