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말 글쓰기

어쨌든 무대는 즐겁다

A군 2024. 10. 2. 01:13

안녕하세요 여러분!

늘 그렇듯, 오랜만입니다.

 

저는 정말 긴 방학을 보냈습니다.

공연을 올리게 됐거든요.

사실 이 글을 이렇게 열린 공간에 써도 될까 정말 많이 고민했지만

이 구멍가게에 몇 자 적는다고 무슨 일 생기겠나 하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항상 객석에서만 바라봤던 무대를 옆에서 직접 만들어나가는 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제 역할이 땀방울 흘려가며 이리저리 발로 뛰는 것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보다는 정신적인 게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로워서 힘들었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스스로가 너무 무능해서 힘들었고,

마지막에 가서는 제가 만든 무대를 제가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힘들었습니다.

뭐랄까, 죄스러웠달까요.

 

그래서 마지막 공연의 막이 내린 후, 무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영화, 드라마, 음악, 책 다 손대도 무대만큼은 상상도 하지 말자.

그렇게 2-3주를 보냈는데,

이제는 조금 괜찮아진 것도 같습니다.

 

저는 무대를 왜 좋아하게 됐을까요.

사실 처음 본 공연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공연을 엄청 자주 보는 편도 아니구요.

물론 아예 관심이 없으신 분들보다는 많이 봤겠지만,

그렇다고 저 공연 좀 봅니다 명함 내밀 정도도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도 무대가 제 인생에서 이토록 큰 부피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지난 몇 주간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입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그 긴장감.

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그 기대감.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이야기를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그 현장감.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맥베스]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맥베스]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이 있죠.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연극 속의 배우라고.

자세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여름밤의 꿈]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삶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예술이 무대예술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감화된 것 아닐까요.

저는 누구보다 인간을 싫어하면서도, 누구보다 인간을 궁금해하는 사람이니까요.

 

공연 날 인터미션 때 했던 생각이 있습니다.

작품 하나를 올리기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준비했는데,

정작 이 공연을 직접 관람하지는 못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

이것도 사람과 굉장히 닮아있지 않나요?

우리는 스스로를 위한답시고 건강한 음식을 찾아먹고, 운동하고, 꾸미고, 공부하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나마 거울에 맺힌, 왜곡되었을 것이 분명한 이미지라도 보는 게 최선이겠죠.

 

주저리 말이 길어졌는데,

제목으로도 썼지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결론은 이겁니다.

어쨌든 무대는 즐겁다.

저는 또 힘들었던 기억들을 망각하고 다시 무대를 찾겠죠.

그것이 무대 앞 객석이든, 백스테이지든.

아직은 인생도, 무대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죽기 전에 어렴풋하게나마 감이라도 잡을 날이 올까요.